유교책판이야기

6편- 약포 후손 정옥 지방관 자처하다.

82호서비 2017. 7. 14. 17:44

DLP]

시청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교책판이야깁니다.

이순신을 살린 약포선생의 신구차 상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장수를 살리고 나라를
구한 상소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 상소문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책판으로 만들어
문집을 간행하고자 했던 후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포의 5대 손 00 정옥은
당상관 자리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의 선조인
약포선생 문집간행에 매달렸습니다.
============================================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약포 정탁 선생의 문집은 모두 171장입니다.

이 문집은 선생의 후손인 00 정옥이
영조때 영해 부사로 있으면서 책판을 만들고
책으로 간행했습니다.

정옥은 당시 좌부승지로
영남학인으로서 중앙관료에 진출한 몇 안되는
인물이었고 정 3품인 승정원 승지로 승진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으로는 대통령 비서실의 요직에
올라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자리를 박차고
지방관인 영해부사를 자청한 겁니다.

◀INT▶김형수 박사/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
"중앙 관료들이 간혹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
사퇴하고 지방관으로 내려가는 경우는 있었니다만, 조상의 문집을 만들기 위해서 중앙 관직을
사퇴하고 지방관으로 내려간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옥은 왜 영해부사를 자청했을까요?

영해는 지금의 영덕지역으로 이곳에는
영양 일월산 등 주변 산림에서 책판의 판목이
되는 나무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C/G1) 이때 구한 나무는
자작류와 단풍나무, 박달나무 등이며
목판의 크기와 비슷한
지름 50cm이상의 목재를 얻기 위해 50-80년생의 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C/G2)이 책판을 판각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습니다.

책판 1장을 제작하는데 현재의 돈으로
200-400만 원이 들어가는데 평균 300만 원만
잡아도 약포책판 171장 제작에는
적어도 5억 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돈은 당시 약포선생의 문중과
고향인 예천유림의 공의를 모아서 조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INT▶이상호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
"지방 유림의 공의를 모아서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뜻을 받들어서 그 이후로 계속 지속적인
유교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던게 바로 유교 책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조상의 유교 책판을 제작하는 것은 자기 일생의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겁니다."
============================================
DLP]
국학진흥원에 기탁된 책판은 대부분
지역 유림의 공의를 모아서 발간됐습니다.

워낙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문중의 힘으로만 책판을 제작하기 힘든데다
선현들이 남긴 학문을 계승하고 후학들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지역 유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멀리하고
지방관을 자처하며 조상의 문집을 발간하려
했던 후손들의 노력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섭니다.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리는데는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유교책판이야기 이호영입니다.
====================================

https://youtu.be/DQmVL4MvfG8